아볼로스투디움 6기 유혜진 퇴고

2018.11.12.

방법서설/ 르네 데카르트. 문예출판사.



전통과 진리 


1. “이 여행은 순전히 나의 발자국을 보려는 것, 걷는 길에 따라 달라지는 그 깊이, 끌림의 길이, 오래전부터 있어왔던 끝 없는 소멸을 보려는 것” 우리는 종종 이 시와 같이 우리의 존재를 찾아 여행을 떠나기도 한다. 일상을 잊고 어디로 떠나는 듯 보이지만, 실은 더 잘 살아내기 위해 일상을 마주하는 행위라고도 볼 수 있다. 17세기의 철학자 데카르트는 이 여행에 나섰다. 좋은 책과 다양한 생각을 공유할 수 있는 학문의 장을 버리고 과감히 여행길에 오른다. 그는 책이 아닌 세계라고 하는 큰 책 속에서 관객으로서 살아보겠다고 결심한다. 떠나는 그의 뒷 모습이 상상이 된다. 그런데 무엇이 그를 여행길에 오르도록 만든 것일까? 


2. 그는 여행을 좋아해서 떠났던 천진난만하기만 했던 방랑가는 아니었던 것 같다. ③ 1636년 출간되어 ‘근대의 아버지’라는 이름을 얻게 한 그의 저서 「방법서설」에, “제 아무리 위대한 영혼의 소유자일지라도 악행을 행할 가능성”이 있다고 적혀있듯, 당시 유럽사회는 중세의 가톨릭 권위가 도전받아 개신교와 갈등으로 떠들썩했고 갈등의 씨앗은 강대국의 욕망과 만나 30년 전쟁이라는 비극을 초래했다. 다시 말해 믿어왔던 진리에 대한 도전의 충격이 중세를 강타한 것이다. 그는 어지러운 상황 속에 홀로 독일로 여행을 떠난다. 그는 벽난로 앞에 앉아 상념의 시간을 갖는 듯 보이지만 사실 그의 머릿속에서는 ‘새로운 진리를 향한 갈망’이 ‘전통’에 도전하며 30년 전쟁만큼이나 치열한 전투가 벌어지고 있었다. 


3. 믿어왔던 전통이 무너지고, 이로 인해 비극이 초래되는 어지러운 환경 탓인지 그에게는 지금껏 배워온 스승의 가르침, 자신의 감각, 배워온 관습, 다수가 동의한 ‘진리’라고 여겼던 것 모두 변하기 쉬운 것이 되어버렸다. 그 모든 것은 불변의 진리의 토대가 되기엔 불충분했다. 결국 그는 수학적 명증성에 대한 기대와 ‘회의’라는 무기를 들고 자신이 있는 세상, 공간, 신체를 구석구석 누비고 회의해보며 끝자락까지 간다. 그는 결국 그 전투에서 승리한다. 그가 모든 것을 회의 했을 때 마지막까지 존재하는 것은 ‘의심하고 있는 사실 자체에서 존재하는 자신이었다. 마침내 데카르트는 ‘의심하는 내가 존재하므로, 나는 존재한다.’라는 명제를 쟁취하게 된다. 그리고 이 명제는 400년 후를 사는 현대인들에게도 유의미하다.


4. ⑤ 데카르트가 살았던 환경과 마찬가지로, 현대인들도 ‘혼란스러운 세상에서 진리란 무엇일까?’ 라는 고민을 하며 산다. 또 중세 가톨릭 권위를 조금은 계승받아온 기독교인들도 마찬가지다. “위대한 영혼의 소유자일지라도 악행을 행할 가능성“이 만연한 일들이 우리사회에 공기처럼 존재하기 때문이다. ④ 오히려 전통과 관습은 우리를 억압하고, 우리가 믿어온 모든 것들에 대해 의심하는 것이 대부분의 우리의 삶을 더 개선시켜주는 듯하다. 가부장이라는 관습과 전통에 대해 데카르트의 ‘전통을 제거해보라’는 제안은 억압과 무지와 권력에서 해방시켜  우리에게 자유를 주는 것 같다. 


5. ①② 데카르트에게는 명증성이 진리를 찾는 유일한 출구인 반면, 기독교인에게는 유일한 출구가 아니다. 기독교인들은 어떻게 진리를 증명하고 있을까? 그리스도인은 인간의 언어와 이성의 한계를 인정한다. 이로부터 비롯되는 명증성으로부터 진리를 확신하지 않는다. 쉽게 설명하자면 모두에게는 각자의 경험과 느낌이 담긴 정신이 있다. 이는 아주 개별적이라 우리는 언어라는 수단을 통해 서로 동일한 부분만 합의하며 공감 할 뿐, 서로의 모든 것이 이해되고 일치될 수는 없다. 이것이 본질적 갈등의 이유다. 완전하게 서로를 이해할 도구가 우리에겐 없다. 그럼에도 해치지 않고 화목하게 지낼 수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생각해보면 ‘사랑’이 있기 때문이다. 현실세계를 부인하는 데카르트와 다르게 ‘현실세계’ 자체가 이 진리를 증거 한다. 또한 ‘전통을 제거하라’는 그의 말과 반대로 기독교인은 ‘말씀’이라는 전통을 통해 성령을 구하며 얻는 사랑으로 함께 살아간다. 기독교인들은 명증성이 먼저가 아닌 전통을 믿고 따라 살 때 찾아오는 기쁨과 삶으로 진리를 명증해낸다.  

 

7. 세상에 질서를 부여하던 중세 가톨릭이 도전받고, 전쟁이 발발되는 혼란한 사회에서 데카르트에게 ‘무엇이 진리인가?’에 대한 고뇌와 회의가 찾아온 것은 어쩌면 당연한 반응일 것이다. 인간에게 비극이 찾아오고 아무것도 설명되지 않는 세계를 보며 찾아온 실존에 대한 물음은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찾아오는 공기와도 같은 물음이다. 진리를 찾아가는 데카르트의 발걸음이 우리에게 유익이 되지만 모든 것들을 설명해내지 못한다. 그렇다면 기독교인들은 무엇이라 말하고 있을까? 우리 모두는 한 번씩은 각자의 여행길에 올라 ‘진리’란 무엇인지 설명해낼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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