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정규직과 직업소명 

1. “먹고 살려고요. 찍고 돈 받고 반복하는 일에서 자아실현은 불가능해요.” 마트 노동자라는 직업을 두고 투쟁을 긴 시간동안 이어가는 목적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A마트 노조대표자에게서 돌아온 대답이다. 통계청에 따르면 한국의 비정규직 노동 통계는 32.9%(17.08기준) 로 국민의 약 3/1의 수치다. 분업화되고 전문화 된 자본주의 사회에서 직업을 가지고 살아간다는 것과 비정규노동은 뗄 수 없는 현실이 되었다. “사람답게 살고 싶다.”라며 노동조합이 신의 존재여부는 신경도 쓸 겨를 없이 생존을 위해 투쟁을 벌이는 현실 속에서 더 이상 소명을 이야기 할 수는 없다.

2 개인이 세계에 주관적 의미를 부여할 수 있는 의지와 능력을 인격이라고 여겼던 베버에 따르면 분업화되고 전문화 된 노동환경에서 직업과 소명의 결합은 비현실적인 요구처럼 들린다. 베버에 따르면, 직업개념은 루터로부터 출발했다. 루터의 자신의 번역서를 통해 처음으로 직업개념을 사용했다. 루터의 정신에서 유래된 이것은 칼뱅을 통해 조직적 윤리 생활양식으로 강화되었다. 이 특징은 금욕적인 자본의 특징과 맞물려 시민 계층적 경제에토스를 만들어 내었고 전문 직업 노동에 삶을 한정 시키는 일상생활양식을 갖춘 금욕적이고도 조직적인 시민계층을 만들어 내었다.

3. Beruf 독일어, calling이라는 영어 단어는 직업·소명을 함께 쓰는 단어다. 신으로부터 부여받은 과업이라는 것을 의미하는 단어임을 알 수 있다. 오늘날 이렇게 쓰이는 직업의 개념은 루터로부터 출발했다. 프로테스탄티즘의 모든 민족과 달리 이외의 가톨릭이나 고전적 고대에는 이 표현이 존재하지 않는다. 이는 루터가 자신의 번역서를 통해 처음으로 직업개념을 사용했기 때문이다. “세속적 일상 노동은 신이 기뻐하는 삶을 살고 있다는교리를 통해 강화되었다. 오늘날의 의미에서 직업 개념은 성서번역에서 원전 정신이 아니라 번역자의 정신에서 유래했음을 알 수 있다.

4 .직업소명은 칼뱅의 예정론과 함께 더 강화되어 발전 되었다. 루터는 개별적으로 세속적 노동을 통해 소명을 이루어가며 신을 기쁘게 해야 한다고 보았으나, 칼뱅은 루터와 달리 세속적 노동을 조직적으로 합리화된 윤리적 생활양식으로 써 자리 잡아야 한다고 보았다. 이 특징은 금욕주의를 추종하는 사람들의 생활양식에 질서를 부여했다. 청교 주의적 교리의 토대가 된 이 특징은 노동을 통해 재산을 증식해야 한다는 책임감신의 영광을 위해 재산이 줄지 않도록 보존해야 한다는 책임감과 함께 자본주의의 자본증식 특징과 맞물려 자본주의 발전과 함께하게 되었다.

5. 베버는 인간의 삶을 전문 노동에 한정시키고, 그 결과 다방면에 걸친 삶을 살려는 인간성을 포기하는 것은 오늘날의 세계에서 가치 있는 행위를 위한 일반적 전제조건이 된다.”라고 오늘날과 시민 계층적 인간성을 표현한다. 자본주의는 기계적 토대 위에 선 이래로 금욕주의 정신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오히려 자본이 주인이 되어 사회는 더욱 분업화 되고 시민 계층적 에토스를 가진 우리는 자신의 삶을 살고 싶은 인간성을 포기하고 있다. 이제는 소명으로서 직업을 이루고 싶어도, 이루어 내기 힘든 비정규노동이 만연한 노동환경이 우리의 현실이 되었다. 직업소명이라는 정신을 통해 자본주의가 발전했지만, 우리는 이 시민 계층적 경제 에토스와 현실 구조의 부조화 안의 불일치 속에 살고 있다.

6. 프로테스탄트로부터 만들어져온 세속적 직업에서의 의무 이행은 조직적 직업윤리로 발전되면서 근대 자본주의와 친밀성을 가지며 직업 전문적이고도 금욕적인 시민 계층적 에토스를 만들어내었다. 하지만 분업화되고 삶을 전문 노동에 한정시키는 현실 속에서 직업소명은 이루어내기 어려운 뜬 구름이 되었다.

 


세속적 금욕주의와 탈근대 (퇴고 전 서평)

노란색으로 물들었던 광장은 이제 무지개빛으로 물 들어 간다. 최근 sns에 퀴어축제의 사진과 함께 폭력을 고발함과 동시에 사랑이 답이라는 글이 올라왔다. 하지만 나는 윤리와 이웃사랑이라는 그 어딘가에서 해매고 있었다. 탈 근대사회로 접어들면서 사회는 인간, 가치, 사랑이라는 언어의 필요를 요구함과 동시에 우리 사회에는 수 많은 배제와 구별 짓기가 일어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하지만 종교는 공적영역에서의 힘을 잃어가고 있다.

 

베버는 세속적 금욕주의가 자본주의 정신에 어떻게 영향을 미치고 그에 맞게 생활양식이 발달했는지 이 책에서 논리적으로 설명해내고 있다. 근대 자본주의의 형태는 직업소명을 토대로 조직적 윤리적인 생활양식의 에토스와 결합되어 발전되어 왔다. 더 나아가 칼뱅주의 사상은 더 강력하고 엄격히 체계성과 조직성을 보이며 자본주의를 만나 존재하지 않던 새로운 시민 계층적인 생활양식을 가진 근대의 인간상을 만들어 냈다.

 

그렇다면 공동체와 이웃사랑의 필요성이 부각되는 탈근대사회에서 베버가 말한 금욕주의가 자본주의 정신을 형성한 요소들을 살펴본다면 타자를 보는 근대인의 관점에 시민 계층적 에토스의 요소가 녹아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우리는 어떠한 관점을 가져야 할 지 방향이 보일지도 모른다.

 

자본주의 형태와 자본주의 정신 간의 법칙적 귀속을 해방시키며선택적 친화력 의 관계에 있다. 19세기 중엽 무렵까지 선대업자의 경영은 자본주의적 조직 형태를 지니고 있었지만 태도, 관계, 노동량, 이윤율 등을 고려한다면 고도의 윤리와 금욕을 특징으로 하는 근대 자본주의 에토스와는 대비되는 전통주의적 에토스였다. 이는 직업소명의 옷을 입은 근대자본주의 에토스가 등장함에 따라 파괴되는데 이 현상은 자본주의 형태와 자본주의 정신의 분리가 가능함을 증명한다.

 

물론 이 논리를 반박할 수 있는 근거가 있다. 그것은 피터 버거의 타당성 구조개념이다.현대 서구문화와 기독교,다원주의 사회에서의 복음을 저술한 레슬리 뉴비긴은 위의 개념을 빌려 사회가 어떤 신념을 타당하게 여긴다는 말은 그 사회의 타당성 구조를 바탕으로 그런 판단을 내린다는 것이다.” 라고 이야기 한다. 이 타당성 구조로부터 자본주의 형태와 자본주의 정신의 법칙적 구속성에 대해 의문이 제기 될 수 있다.

 

하지만 그는 이어 복음이 타당성 구조를 발생시킨다.” 며 다시 관계의 귀속성을 뒤엎는다. 이는 형태와 정신이 적합한 관계에 있지만 법칙적인 상호 의존관계에 있는 것이 아니다.”라는 이들의 선택적 친화성이라는 관계성을 보여주는 일례이며 베버의 관점에 타당성을 뒷받침한다.

 

칼뱅의 예정설을 통해 이 금욕주의는 직업소명아래 더엄격하고 인간적 위안이란 존재하지 않는 조직체계적 직업노동윤리의 합리화 과정과 힘이 강화된다. 청교주의의 세속적 금욕주의는 비합리적 충동의 억제를 강조하는 근대 자본주의 발전과 맞물려 근대 자본주의 정신의 근간을 마련한다. 부를 비속하게 사용하지 않는다면 신의 은총을 받았다는 의식을 가지고 영리 이해를 추구할 수 있는 신앙을 가지고 신의 뜻으로 합리화되었다. “청교주의적 에토스가 자유노동의 합리적인 조직에 기반 하는 시민 계층적 경제에토스가 된 것이다

베버는 정신없는 전문인, 가슴 없는 향락인이라는 니체의 표현을 빌려서 근대 자본주의의 인간상을 시민계층을 자율적 주체로 재정의 하면서도 삶을 전문적 직업노동에 한정하며 끊임없이 새로운 삶을 추구하는 체념과 사이에서 살아가는 존재로 이야기한다. 개인주의적, 자기 규율적, 금욕주의적, 전문 직업 노동적인 특징을 지니는 근대인이 탄생한 것이다. 그렇다면 이 인간성은 이웃사랑이 필요한 이 시대에 타자를 보는 우리의 관점에 어떻게 작용할까?

 

세속 금욕주의 정신과 그것을 체계적이고 소명적으로 직업 노동으로 풀어내는 특징이 선택적인 삶을 부여받은 이들이 그러지 못한 이들을 이분법적으로 보았고 이는 분파를 형성할 정도로 강화되었다는 것을 볼 때 그 단절을 통해 이는 근대인의 특징과 타자를 보는 관점의 연관성을 이야기해주고 있는것 같기도 하다.

 

또한 광기가 신의 은총과 마찬가지로 설명될 수 없는 영역이라면, 기존의 실천적 의식과 확립된 규범을 위반하는 이들이 광인이라는 인식에서 그들의 존재를 수용할 수 없다고 여겼다.” 는 푸코의 주장은 실천적 의식과 규범이 구별과 배제를 만들어 낼 수 있는 합리적 가능성을 보여주는 것 같기도 하다. 광인들이 수용되어 강제적으로 노동을 하게 된 것은 노동의 성스러운 가치를 이념화 하는 부르주아 권력과 사회의 윤리적 명분 때문이라는 해석이 가능해진다.”라고 이야기 하는데, 이는 직업소명에 따른 강력한 조직체계적 윤리 요소가 구별과 착취를 합리화 시킬 수 있는 가능성 또한 보이는 대목이다.

 

지금까지 프로테스탄티즘의 금욕주의의 현대인의 삶의 양식을 지배하는 자본주의 정신을 만들어내는데 기여한 사실을 금욕주의의 발전 과정과 자본주의와의 결합과정 통해 근대인의 정신을 어떻게 만들어 왔는지 논해보았다. 어쩌면 이 세속적 금욕주의로부터 영향을 받은 시민 계층적 에토스는 타자를 보는 현대인의 관점에 영향을 주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탈근적 조류에서 배제와 구별을 보는 우리의 시선에 베버는 근대적 인간성을 가진 우리가 어떤 관점으로 바라볼 수 있는지 이를 과제로 안겨준다.

 


'2. 웹' 카테고리의 다른 글

[Jquery] 선택자와 Filter 사용법  (0) 2021.08.14
홀로코스트와 현대성_지그만트 바우만  (0) 2018.11.25
방법서설  (0) 2018.11.24
과학과 성경의 대화 _버나드 램  (0) 2018.10.27
담론과 진실_미셸푸코  (0) 2018.10.27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