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5월 3일(월) ~ 2021년 10월 26일 (수) 

날짜를 적어야겠노라면 휴대폰 달력을 반드시봐야 하는 나인데, 이 교육의 기간은 나에게 너무 특별해서 날짜와 요일, 날시까지 다 기억난다. 28년의 인생에서 가장 뿌듯하고도 스스로에게 잘했다고 칭찬해주고 싶다. 

코딩을 시작하게 된 계기

중, 고, 대학교 과정에서 공부한 사회학, 사회복지학, 이전 직장에서의 일들도 모두 값지고 즐겁긴 했지만, 나는 어디선가 계속해서 성장하고 공부하고, 공유하고, 글을쓰고픈 갈망이 있었다. 입사동기들도 도데체 언제부터 코딩에 발을 붙이게 된거냐고 물어볼때마다 나도 정말 모르겠다. 유혜진이 코딩을 한다고? 라고 말할때마다 기분이 나쁘다기보다는 스스로도 누군가에게 묻고싶을 정도로 신기했을 정도니까. 정리해보자면 세가지다.

 

1. 끊임없이 배우는 걸 나는 좋아한다. 배울 때 살아있음을 느끼고, 모르는 상태가 즐겁다.

2. 나의 지식을 축척해가는 일을 즐거워한다.

3. 원인을 파헤치고, 이유를 찾고 논리적인 흐름이 중요하다.

직장을 다니면서 나를 알게되었기 때문에 조금 더 갈팡질팡하지 않고 빠른 결단으로 들어설 수 있었다. 

3가지를 알게 되기까지, 이전 직장에서의 경험 그리고 19년도 공부해서 취득했던 사회조사분석사가 큰 몫을 했다. 통계 공부와 실습을 병행하면서 수학에도 즐거움을 다시 느끼기 시작했었고, 직장에서 경험했던 고통스러운 시간도 나를 알아가는 발판이 되어주었던 것 같다. 힘들었던 이유는 5분단위로 일이 끊기고 전화받는 환경이 힘들었던 것이다. 그런데 그런 일이 또 맞는 동기를 보면서 적성의 문제라고 인정하기 시작했던 것 같다. 이미 이전부터 철학수업을 들으며 논리를 펼치며 글을 쓰는 일이 나에겐 중요했던 걸 알기때문에 서서히 새로운 일을 하고싶다는 확신이 생기기 시작했고, 그 과정에서 코딩이 친밀했던 이유는 어쩌면 spss를 공부하며 성공할 수 있었던 자신감 때문이었던 것 같다.  

 

교육기관 선정

생활코딩, 부스트코스cs 강의, 스파르타코딩클럽, 신촌메가스터디에서 모든 교육을 섭렵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냥 공부가 하고 싶었던 것 같다. 그저 무언가를 자꾸 알아가고 배우고싶다는 열망이 있어서 그 어떤 과정도 재미있었다. 도중에 인프런을 통해서 [비전공자, 코딩교육] 이라는 pdf를 다운받아서 경험담을 듣게 되었고, 국비교육을 선택할지 3개월간 6-700만원을 내고 취업에 뛰어드는 일을 선택할지 굉장한 고민을 많이 했었다. 국비교육을 선택한 이유는 돈을 아끼자는 마음이었고, 긴 기간동안 조금 더 제대로 배우고자하는 마음이 컸기 때문이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개인적으로는 잘 한 선택이었다고 생각한다. okky를 통해서 조금 더 나은 교육센터가 어떤 곳인지 후기를 골라가며 선택하게 되었다. 애초부터 의존적으로 살고싶지 않다는 마음이었기때문에 방향성을 제시하는쪽으로교육생을 키워가는 이곳이 좋았다. 

 

 

교육 전 IT산업에 대한 생각, 코딩에 대한 생각 변화
 

이전에는 그랬던 것 같다. '수학천재', '사회성부족해질 수 밖에없는..', '허리굽어지는일', '척박한 환경'의 사람들. 그리고, 지금도 생각이 동일하다. 수학머리는 남자들이 대부분 빠르게 돌아가는 경우도 있고 컴퓨터 앞에 앉아있다보니 사람들을 만날새가 없고, 허리가 정말 굽어지고, 눈이 안좋아지고, 밤낮이 바뀐다. 

그러나 중요한 건 내가 이 일을 왜 선택했는가에 대한 명확한 이유가 한가지 있어야 한다는 것이 중요하다. 어느 일이나 장단점은 있기 마련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의 취업준비과정이 피곤하면서도 마음은 행복했던 이유는 계속 공부를 하고 깨달아 갈 수 있어서다. 실제 취업 후에 현장에서는 내가 만든 기능이나 웹이 정말 이용자들의 업무 생산성을 높일 수 있다면, 그게 조금 더 인간에게 이로운 방향으로 작동한다면 나는 정말 더할 나위 없이 기쁠 것이다. 최종 목적지는 그것이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코드를 작성하고 쓰다보면 코드로 소통하는 일이라는 것을 깨닫는다. 개발자도 치열하다. 

1. 오류가 생기면 해결이 가능할까라는 마음에 불안함을 항상 마주하고 

2. 다시 수정해야하는 일이 생길때 수정하다가 더 오류가 커지면 불안하다. 

3. 정말 생소한개념을 마주했을때 두려움도 생긴다.

 

두려움과 불안의 연속

그럼에도 해결되었고, 그 힘은 조원들의 소통과 나의 인내였다. 

" 코드가 익숙해지면 된다" 는 마음으로 버티고버티며 계속 보았다. 

이런 일련의 과정 속에서 삶에 대한 태도도 조금 변화하기 시작했다. 

마주한 문제는 해결될 수 있다는 자신감과, 정말 모르겠을때는 옆 사람과 함께 하면된다는 것 

그리고 내 고집이 정답이 아니라는 것이다. 

배우는 게 좋았으면서도 모르는 상황을 마주했을때 두려움을 마주하는 나를 보면서 모순인가 생각했지만

어쩌면 나는 이 스릴을 즐기고 있는지도 모른다. 

자바강의를 들을 때 밤새서 같이 버티던 비전공자 친구 1명이 중간에 나갔는데, 그 친구 생각이 종종난다.

공부할때는 항상 분기점이 있었고 분기점을 넘어서면 터널을 통과한 것 처럼 보이는 게 급속도로 많아졌다. 

그 기쁨을 아직도 기억하는데, 그 고통을 딛고 그 친구도 함께 할 수 있었다면 참 좋았을 것이라고 말이다. 

 

다짐

지금보다 더 힘들어질 수 도 있다.

취업을 하면 이런 과정이 배로 늘어날 것이고, 두려움도 배로 늘것이다.

조직내 관계도 지금의 양상과 다르기 때문에 더 쉽지 않아질 것이고

소통역량은 계속해서 늘려가야할 것이고

기한 내에 한계를 넘어서 구현해야할 것이고

잠도 자지 못할 것이고 

불안 할 것이지만 단 한가지, 안정적인 직장을 포기하고 내가 이 길을 선택한 이유를 스스로 반드시 기억한다.

공부하는 삶이 좋고, 깨달음의 순간이 즐겁고 좋아서 선택했다는 것

이후에 찾아올 괴로움의 시간도 감내할 자신이 나에게는 있다. 

더 나은 환경을 기대하지는 않는다.그저 내가 바랬던 것만을 기억하기때문에 즐거울 수 있다는 다짐 뿐이다.겸손한 개발자가 될 거다. 2부(기술 정리) 는 포폴정리하구 써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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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기 특강  (0) 2018.10.27

철학과 세계관은 글쓰기의 핵심이라고 한다.

그래서 이야기의 아름다움은 표현의 아름다움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이야기와 체험 그 자체에서 뿜어져 나오는 것이다.


1. 텍스트는 자기 체험의 필어와 용광로에 녹여서 다시 내놓아야 한다. 그래서 서사보다 중요한 것은 체험이다. ‘현재의 두터움이 글쓰기의 질을 결정한다. 현재의 두터움이란, 삶의 이야기와 고통, 저항, 비판정신이 얼마나 담겨있고 얼마나 현재를 두텁게 만들어주는 가를 의미한다. 아마 해석과 설명의 풍부함을 이야기하는 그 두터움을 말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감수성의 질을 결정하는 경험을 강조하는 말은 공감한다.

2. 하지만 이런 질문은 든다. 경험이 많은 사람만이 글의 질이 높다면 경험과 나이는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나이와 인격의 관계는 ? 경험은 찾아나서는가? 찾아오는가? 그 경험이란 '씀'에서 나오지 않을까? '표현'으로부터 시작되지 않을까.

3. 지성훈련을 해나간다는 것은 자칫하면 공부만 하고 머리로 하는 훈련으로 오해하기 십상이다. 하지만 여기서 지적하는 것은 기독교지성의 개발은 고독과 침묵과 주의집중이 필요하다고 이야기한다. 즉 지성개발엔 영성개발에 필요한 부분이 함께하는 것이다. 지성과 영성은 연결되어 있다. 이는 곧 정지된 시간을 가지고 있는가?’에 대한 질문으로 다가온다. 그래서 공부만 하는 삶, 참여만 하는 삶, 고독만 찾는 삶은 틀린 것이다. 모든 것은 존재에 총체적으로 균형잡혀 나가야 한다. ‘무엇이 나로 하여금 글 쓰도록 충동하는가?’에 대한 질문에 대한 나의 대답은 두 가지 다이다. 고독으로부터 출발하기도 하고, 외부로부터 출발하기도 한다. 결국 이에 대한 대답은 소통으로부터출발해야한다. 나와의 소통이든, 하나님과의 소통이든, 세상과의 소통이든 어떤 대상과의 연결점 없이 독백만 늘어놓는 글쓰기는 의미있는 글쓰기가 아닐 것이라는 생각또한 든다. 더 나아가 독백만 늘어놓느다 할지라도 그 글스기 안에는 어떠한 소통이 자리잡고 있는지도 모른다.

5. 글쓰기와 행동, 그 사이에 어떠한 것이 있을까? 글쓰기는 생각을 드러내는 것이기도 하지만 존재를 드러내는 것이 글쓰기라면 행동과 삶이 드러난 글쓰기여야 한다. 즉 이말은 몸 전체로 떠올리는 생각 즉 종교와 삶이 분리되지 않고 몸으로 살아가는 삶 그 자체여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존재를 담은 글쓰기와 생각을 담은 글쓰기는 다르다. 철학과 세계관이 드러난 글쓰기라면 몸으로 살아가는 삶을 드러낸 글쓰기여야 한다. 그래서 진짜 글쓰기란 그렇게 살아내고 있는 몸과 행동까지도 실천까지도 담고 있는가? 그렇게 살아내고 있는가? 글을 쓰기전과 후에도 끝없이 돌아봐야 하는 책임까지도 지니고 있는 무거운 것 같기도 한다.

6. 신대표는 강신주의 감정격발에 나온 노숙인의 묘사를 지적하며 누군가를 나의 인식박스에 넣는 일반화를 피해야 한다고 강하게 이야기 한다. 한사람 한사람을 고유하게 보는 세계관이 먼저되어야 한다고 이야기하는 것으로 보인다. 만나보지 않은 상태에서 글을 쓰는 것은 위함허다고 이야기한다. 그런데 이것에서 다시한번 질문이 생긴다. 세계관이란 끝 없이 변하고 하나를 인지하는 순간 완벽히 알아갈 수 없는 과정속에살아가는 것인데, 그렇다면 그 과정에서는 글을 써서는 안 된다는 말인가? 어차피 사람은 실수를 하고 그 속에서 살아가는 것이 아닌가?

7. 그리고 이는 다시 설명된다. 그래서 글쓰기는 겸손해야 한다고 말이다. 인식과 인식대상과의 관계성을 끝 없이 돌아보며 글을 써야 한다고 말이다. 나는 복지관 봉사를 통해 마주한 사람들의 이야기, 투쟁현장에서 일하시는 분들의 삶을 마주하며 공감하지 못하는 나를 자책하기도 하고, 이런 체험이 무슨 의미가 있나 노력에 대해 무력감을 느끼기도 했다. 투쟁현장에 갔을 때 교수님께 던졌던 질문은 여러 가지 의미로 해석되고 이야기될 수 있겠지만 지금 떠오르는 생각 중 하나는, 결국 실천과 체험에 대한 한계를 느꼈던 것 때문인 것 같다. 하지만 결국 실천과 체험은 같은 의미가 될 수 없다. 아무리 느끼려 해도 느낄 수 없고 같은 경험을 한다 해도 강도는 또 다를 것이다. ‘공감이라는 감수성에 대한 고민 역시 커진다. 공감은 결국 그 자체를 느끼는 것이 아니라내 경험에 빗대어 나오는 것이기 때문에, 어쩌면 같은 공감대를 형성하는 일 자체도 참 쉬운일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는다. 아무튼 결국엔 그런 무기력에서 벗어나는 것 또한 교만에서 벗어나는 일이다. 그저 도달할 수 없음을 인식하고, 그리고 글쓰기에도 한계가 있다는 것을 인식하고 용기 있게 그 순간에 글을 써내려가는 것이 필요할 것이다. 특히나 의견이 다양하고 가치가 다양한 포스트모더니즘 사회안에서의 글쓰기란 그러한 용기가 더 필요할 것이다. ‘아니라고혹은 틀리다고지적 받을 수 있고 또한 틀릴 수 있지만 그런 용기를 가지고 살아낼 수 있는 능력과 글을 쓸 용기도 함께 가야한다. 그래서 순간순간에 모르는 것에 진실해야 하고 겸손해야 한다. 그래서 글쓰기는 존재가 담기고 철학이 담기는 것이라고 표현하는 것 같다.

8. 마지막으로 글쓰기의 비결은 대상이 당신에게 말을 걸고 스스로 표현을 결정할 때까지 가만히 서서 그 대상을 열심히 공부하는 것이라고 했다. 이는 나에게 참 많은 함의를 가져다 주는데, 타자에게 표현의 기회를 주고, 자기 자신도 의문을 품고 결론에 도달하지 못했을 때의 의문의 고통과 고뇌를 함께 느껴가는 삶이 함게하는 것 같다. 결론을 미리 알고 있다고 혹은 추측하며 고통을 덜어주는 것이 함께함이라기 보다는, 질문을 진심으로 질문으로 여기고 그것을 내 삶에 끌어와 진지하게 함께 고뇌하며 가지게 되는 나의 삶의 고뇌를 함께 나누는 것이 진짜 함께함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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