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과 인간소외 그리고 성경
1. 코딩 열풍의 바람이 불고 있다. IT 산업이 4차 산업혁명 시대를 이끌 분야 중 하나로 주목받기 때문이다. 대학은 인문학을 소외시키고 실용주의적 학문을 중심으로 구조조정이 시작 된 지 오래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인문학 콘텐츠에 대한 수요가 급증하고 있다. 출판사에서는 최근 인문학 판매량이 2배 가까이 늘었고, 백화점에서는 인문학 강좌를 작년보다 20%를 늘렸다. 소비자의 욕구에 민감한 시장에서 일어난 일들이니 인문학에 대한 목마름이 어떠한지 말할 것도 없을 것이다. 영상매체 콘텐츠 역시 이에 부응한다. 실용, 직업, 기술에 민감한 사회에서 IT의 발전과 동시에 증가한 인문학의 수요가 말하는 바는 무엇일까? 우리는 어떤 고민으로 책을 집어 들기 시작했을까?
2.미처 준비되지 않은 과학의 진보 앞에 나타난 인간소외가 불안을 야기했기 때문일 것이다. 최근 최저임금 인상과 동시에 외식업계에 무인화 기계가 도입되면서, 알바자리가 급격히 감소했다. 제도도 미처 따라가지 못했다. 19세기 초, 기계를 부수며 이 불안에 저항했던 ‘러다이트 운동’처럼 우리는 같은 공포를 마주한다. 『과학과 성경의 대화』를 저술한 복음주의 신학자 버나드 램 역시, 과학이 꽃 피지만 인간 실존의 의문에 대해 설명해 줄 수 있는 신학의 힘이 무너져 가는 불안의 시대를 살았다. 그의 바람은 “복음주의와 과학이 성경을 탁월하게 다루던 19세기 말의 전통으로 되돌리는 것”이었다. 그는 힘을 잃은 성경의 무력함과 ‘목적’은 없고 기술로만 나아가는 행렬을 안타까워했다. 그는 성경에 대한 오해와 과학의 한계를 제시하며 과학과 성경이 서로의 필요를 보기 원했다.
3. 그는 “성경과 과학의 화해가 필요하다”는 말로 표현하지만 사실 이는 “과학에 복음이 왜 필요한가?”로 바꾸어 읽어낼 수 있다. ‘주류’로 자리 잡힌 현대 과학의 입장에서는 ‘신비화되었던’ 성경은 불필요한 개입이기 때문이다. 성경의 신빙성과 권위는 언제부터 사라져 갔을까? 19세기 과학의 발전은 권위적인 중세 로마가톨릭교회에 대한 반항을 뿌리로 개신교 정통주의와 대립하게 되었고, 급작스러운 근대과학의 발전에 대응을 준비할 수 없었던 초정통주의는 적대시하는 것만으로 반응했다. 그렇게 과학과 복음주의 간 분열이 거세진 때, 과학 분야의 교육은 발전을 이룩해내었고 성경은 이제 ‘주류’를 이루고 있는 과학에서 소외받게 되었다. 주류에서의 배제 속에 성경은 ‘반과학적’인 것으로 여김 받는다. 그런데 정말 반과학적일까?
4. 우리는 성경에 대해 많은 오해를 가지고 접근한다. 반과학적이라는 특성을 근거로 성경은 과학과 대척점에 놓인다. 하지만 성경은 전과학적인 언어로 표현된 것일뿐, 반과학적이지 않다. 성경이 반과학적이지 않다는 근거는 ‘점진적 창조이론’을 통해 설명된다. 램은 성경과 과학이 대척점이 아닌 “긍정적 관계”에 있다는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한다. ‘점진적창조론’은 신의 창조를 ‘즉성적 창조’와 ‘파생적 창조’로 나누어 설명한다. 세상은 설계자가 ‘완전한 형상’ 고안, 계획해 낸 상태인 ‘즉성적 창조와’ 이후에 법칙과 체계에 따른 ‘파생적 창조’에 따라 만들어졌다고 설명한다. 이는 생명의 진화적 특성을 받아들이고 자연세계가 체계와 법칙적이라는 관점에서 진화론과 반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따라 성경은 ‘반과학적’이 아니다. 하지만 유사성을 찾는 것에만 주력하는 것이 과학과 성경이 화해하는 올바른 방법은 아니다. 과학에는 한계가 분명히 있다.
5.과학은 복잡한 것을 단순한 것으로 환원하는 ‘환원주의’적 사고를 지닌다. 이 과정에서 사실들은 파괴되기도 하는데, 양심이 심리적 현상으로 정의되는 환원이 그 예다. 더 나아가 과학은 초자연적인 것에 대한 편견을 가지고 있다. 여기서 한계가 드러난다. 과학적 사고는 복잡한 것을 단순화시킴으로써 실존적 의문에 답을 해주지 못한다. 초자연적 현상에 대한 편견으로부터 초월자에 대한 ‘기대’와 ‘희망’에 대한 경로를 가로막혔다. 이제 그 몫은 ‘우리 자신’에게 달렸다. 모든 걸 짊어진 우리는 모두 불안하고 피로하다. 사람들은 이 질문을 인문학에서 찾으며 방황하고 있다. 그러나 인문학에 대한 수요는 힘을 잃어버린 복음에 대한 향수일지도 모른다. 우리는 방황하고 있다.
6. 과학은 발전한다. 하지만 철학과 목적이 결여된 방향 감각 없는 과학의 발전 앞에 인간이 설 자리는 사라져만 가고, 성경은 힘을 잃은 채 놓여있다. 불안한 사람들은 이제 인문학에서 인간의 근본적 물음을 던진다. 그리고 여기, 성경에 대한 많은 오해가 놓여있다. 우리는 새롭게 성경을 해석하고 바라봄으로써 과학이 만들어 낸 불안을 잠식시킬 수 있을지도 모른다. 사람들은 열광을 멈추고 인문학에 묻고 있다. ‘기술의 진보 속에 인간은 행복한가?’ ‘과학이 우리를 어디로 데려가는가?’ 이제 성경을 들고 복음주의자들이 대답해야 할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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