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과 세계관은 글쓰기의 핵심이라고 한다.

그래서 이야기의 아름다움은 표현의 아름다움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이야기와 체험 그 자체에서 뿜어져 나오는 것이다.


1. 텍스트는 자기 체험의 필어와 용광로에 녹여서 다시 내놓아야 한다. 그래서 서사보다 중요한 것은 체험이다. ‘현재의 두터움이 글쓰기의 질을 결정한다. 현재의 두터움이란, 삶의 이야기와 고통, 저항, 비판정신이 얼마나 담겨있고 얼마나 현재를 두텁게 만들어주는 가를 의미한다. 아마 해석과 설명의 풍부함을 이야기하는 그 두터움을 말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감수성의 질을 결정하는 경험을 강조하는 말은 공감한다.

2. 하지만 이런 질문은 든다. 경험이 많은 사람만이 글의 질이 높다면 경험과 나이는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나이와 인격의 관계는 ? 경험은 찾아나서는가? 찾아오는가? 그 경험이란 '씀'에서 나오지 않을까? '표현'으로부터 시작되지 않을까.

3. 지성훈련을 해나간다는 것은 자칫하면 공부만 하고 머리로 하는 훈련으로 오해하기 십상이다. 하지만 여기서 지적하는 것은 기독교지성의 개발은 고독과 침묵과 주의집중이 필요하다고 이야기한다. 즉 지성개발엔 영성개발에 필요한 부분이 함께하는 것이다. 지성과 영성은 연결되어 있다. 이는 곧 정지된 시간을 가지고 있는가?’에 대한 질문으로 다가온다. 그래서 공부만 하는 삶, 참여만 하는 삶, 고독만 찾는 삶은 틀린 것이다. 모든 것은 존재에 총체적으로 균형잡혀 나가야 한다. ‘무엇이 나로 하여금 글 쓰도록 충동하는가?’에 대한 질문에 대한 나의 대답은 두 가지 다이다. 고독으로부터 출발하기도 하고, 외부로부터 출발하기도 한다. 결국 이에 대한 대답은 소통으로부터출발해야한다. 나와의 소통이든, 하나님과의 소통이든, 세상과의 소통이든 어떤 대상과의 연결점 없이 독백만 늘어놓는 글쓰기는 의미있는 글쓰기가 아닐 것이라는 생각또한 든다. 더 나아가 독백만 늘어놓느다 할지라도 그 글스기 안에는 어떠한 소통이 자리잡고 있는지도 모른다.

5. 글쓰기와 행동, 그 사이에 어떠한 것이 있을까? 글쓰기는 생각을 드러내는 것이기도 하지만 존재를 드러내는 것이 글쓰기라면 행동과 삶이 드러난 글쓰기여야 한다. 즉 이말은 몸 전체로 떠올리는 생각 즉 종교와 삶이 분리되지 않고 몸으로 살아가는 삶 그 자체여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존재를 담은 글쓰기와 생각을 담은 글쓰기는 다르다. 철학과 세계관이 드러난 글쓰기라면 몸으로 살아가는 삶을 드러낸 글쓰기여야 한다. 그래서 진짜 글쓰기란 그렇게 살아내고 있는 몸과 행동까지도 실천까지도 담고 있는가? 그렇게 살아내고 있는가? 글을 쓰기전과 후에도 끝없이 돌아봐야 하는 책임까지도 지니고 있는 무거운 것 같기도 한다.

6. 신대표는 강신주의 감정격발에 나온 노숙인의 묘사를 지적하며 누군가를 나의 인식박스에 넣는 일반화를 피해야 한다고 강하게 이야기 한다. 한사람 한사람을 고유하게 보는 세계관이 먼저되어야 한다고 이야기하는 것으로 보인다. 만나보지 않은 상태에서 글을 쓰는 것은 위함허다고 이야기한다. 그런데 이것에서 다시한번 질문이 생긴다. 세계관이란 끝 없이 변하고 하나를 인지하는 순간 완벽히 알아갈 수 없는 과정속에살아가는 것인데, 그렇다면 그 과정에서는 글을 써서는 안 된다는 말인가? 어차피 사람은 실수를 하고 그 속에서 살아가는 것이 아닌가?

7. 그리고 이는 다시 설명된다. 그래서 글쓰기는 겸손해야 한다고 말이다. 인식과 인식대상과의 관계성을 끝 없이 돌아보며 글을 써야 한다고 말이다. 나는 복지관 봉사를 통해 마주한 사람들의 이야기, 투쟁현장에서 일하시는 분들의 삶을 마주하며 공감하지 못하는 나를 자책하기도 하고, 이런 체험이 무슨 의미가 있나 노력에 대해 무력감을 느끼기도 했다. 투쟁현장에 갔을 때 교수님께 던졌던 질문은 여러 가지 의미로 해석되고 이야기될 수 있겠지만 지금 떠오르는 생각 중 하나는, 결국 실천과 체험에 대한 한계를 느꼈던 것 때문인 것 같다. 하지만 결국 실천과 체험은 같은 의미가 될 수 없다. 아무리 느끼려 해도 느낄 수 없고 같은 경험을 한다 해도 강도는 또 다를 것이다. ‘공감이라는 감수성에 대한 고민 역시 커진다. 공감은 결국 그 자체를 느끼는 것이 아니라내 경험에 빗대어 나오는 것이기 때문에, 어쩌면 같은 공감대를 형성하는 일 자체도 참 쉬운일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는다. 아무튼 결국엔 그런 무기력에서 벗어나는 것 또한 교만에서 벗어나는 일이다. 그저 도달할 수 없음을 인식하고, 그리고 글쓰기에도 한계가 있다는 것을 인식하고 용기 있게 그 순간에 글을 써내려가는 것이 필요할 것이다. 특히나 의견이 다양하고 가치가 다양한 포스트모더니즘 사회안에서의 글쓰기란 그러한 용기가 더 필요할 것이다. ‘아니라고혹은 틀리다고지적 받을 수 있고 또한 틀릴 수 있지만 그런 용기를 가지고 살아낼 수 있는 능력과 글을 쓸 용기도 함께 가야한다. 그래서 순간순간에 모르는 것에 진실해야 하고 겸손해야 한다. 그래서 글쓰기는 존재가 담기고 철학이 담기는 것이라고 표현하는 것 같다.

8. 마지막으로 글쓰기의 비결은 대상이 당신에게 말을 걸고 스스로 표현을 결정할 때까지 가만히 서서 그 대상을 열심히 공부하는 것이라고 했다. 이는 나에게 참 많은 함의를 가져다 주는데, 타자에게 표현의 기회를 주고, 자기 자신도 의문을 품고 결론에 도달하지 못했을 때의 의문의 고통과 고뇌를 함께 느껴가는 삶이 함게하는 것 같다. 결론을 미리 알고 있다고 혹은 추측하며 고통을 덜어주는 것이 함께함이라기 보다는, 질문을 진심으로 질문으로 여기고 그것을 내 삶에 끌어와 진지하게 함께 고뇌하며 가지게 되는 나의 삶의 고뇌를 함께 나누는 것이 진짜 함께함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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